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 가락동-방이동 고분군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석촌동 고분군]]과 더불어 [[한성]] [[백제]]의 중심 고분군으로 '''여겨졌던''' 고분군~~이자 원룸촌~~. 일제강점기 지도를 보면 수십기의 봉토분이 잔존해 있었지만, 지금은 고분군 전체 서북쪽의 4기의 발굴고분과 4기의 미발굴 고분만이 보존되어있다. '''백제, [[신라]] [[고고학]]의 뜨거운 감자'''이다. 하술하겠지만 이 고분군을 누가 세웠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. 통설대로 백제가 세운 무덤으로 볼 경우 한성백제기 수도의 석실분으로써 의미가 있다. 수정설대로 [[고구려]]-신라계가 세운 무덤으로 볼 경우 5세기 후엽 백제를 물리치고 이 지역에 진출한 고구려나, 그 고구려를 물리치고 6세기 중엽 한강유역에 진출한 신라의 지배양상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. 최근에는 가락동 3호분은 백제, 나머지는 신라로 보는 견해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으며, 모두 백제 고분이라고 보는 논자 역시 만만치 않다.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8년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집중 토론회가 있었다--본격 검투장 오픈--. 수십년을 끌어온 논쟁인만큼 결론이 나오진 않았지만, 일단 가락동-방이동 고분군은 백제 유적으로써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제외되었다. 신라파의 판정승. 현재는 방이동 고분군 일대에 공원을 조성하여 8기의 무덤이 보존되어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